<기고> 고일영 출판·문화·연극 기획자 = 「아무튼 오늘중에 결혼식을 치르자」

▲ 고일영 출판·문화·연극 기획자

가족들과 이 달 말 떠날 여행을 약속했다.

그동안 시험보느라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녀석들과 뒤치다꺼리 하느라 잠까지 설친 아내를 위해 미리 제주도 항공편 예약과 돌아 볼 곳들을 꼼꼼히 메모해 뒀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편함에서 집어 든 청첩장을 펴는 순간 갑자기 골이난 표정의 가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올봄에도 지리산 호텔 예약까지 해놓고 취소한 전과가 있는데, 하필이면 가족여행 출발하는 날 결혼식 청첩장이라니...

영어 강의를 직업으로 시작하던 해부터 오랫동안 큰 도움을 주신 분의 장남 결혼식이라서 고민은 점점 커진다.

필자 뿐 아니라 많은 가장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을 간절히 기대한다.

하지만 봄 가을에 날아드는 결혼식 초청장은 우리의 작은소망을 산산이 부숴 버린다.

몇 시간씩 걸려 식장을 찾아 가도 하객이 너무 많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별도로 준비된 곳에서 멀티비전으로 중계되는 결혼식을 보며 식사하고 돌아오기에 십상이다.

집에서 TV를 마주하고 라면 먹을 때와 뭐가 다른가?

그런데 요즘 결혼문화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은 평일 저녁에 치르는 결혼식(Night wedding Ceremony on weekday)이다.

오늘 초대받아 찾아 간 저녁 결혼식 행사(오산컨벤션웨딩홀·대표 정미섭)는 배우들을 통해 재연하며 이에 딸린 다양한 행사를 보여줬다.

특히 신랑 신부 첫 만남의 순간을 뮤지컬로 구성, 펼쳐 보이는 프로그램은 하객들에게 아주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내가 알기로 실속파들은 평일 저녁 결혼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일 대비 20∼30% 정도 예식비가 저렴하고 한 시간 내에 후다닥 끝나는 예식시간도 30 분 늘어 여유가 있다.

당연히 품위는 덤이다.

또한 밤이 주는 환상은 결혼의 낭만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평일 목,금요일에 예식을 치르면 주말을 허니문 장소에서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뜻밖의 장점도 있다.

그래도 평일에 결혼식을 하면 하객이 적지 않겠느냐 걱정했더니, 가깝게 지내는 지인(황미옥 독서지도사)이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

“주말 결혼식은 휴식시간을 뺏기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평일 결혼식은 저녁식사를 초대받아 오히려 들뜬 기분으로 갈 것 같다. 또 하객으로 올 사람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오게 마련이구요.”

오산컨벤션웨딩홀에서 준비한 행사는 저녁 결혼문화에 자세한 설명과 인기있는 혼수용 전자제품 전시와 그럴싸한 만찬이 제공되는 멋진 이벤트였다.

마치 작은 결혼박람회(Wedding Fair)를 다녀 온 느낌이다.

천재 극작가 베르롤드 브레히트(Bertolt Brecht)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The three penny opera)에 펀(pun)이 짙게 묻어 난 대사가 떠오른다.

반대하는 결혼을 고집한 딸에게 아버지는 묻는다.

"그래, 결혼한 다음 뭐 할 거지?“

"글쎄요?"

딸이 당황스러워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는 스스로 대답을 한다.

"그다음은 이혼이지."

하하, 이혼을 하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든 일단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밤에 한다면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미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