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기획특집〉6·25한국전쟁과 오산(①·②·③)

① UN군(미 육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죽미령에서 첫 전투 벌이다.

② 한 날 ‘떼제사’ 오산(양민) 보도연맹 사건을 아시나요?

③ K-55오산비행장(Osan Airbase)은 평택에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가 도래한 20세기(1901.1.1~2000.12.31)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점철됐다.

대표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양진영으로 갈려 싸운 전쟁이다.

또한 스페인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보스니아전쟁과 같이 이념·종교·인종 갈등으로 빚어진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인류역사 동서고금을 통해 전쟁(戰爭)은 폭력으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산하를 파괴하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전쟁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비운과 아픔을 고착시키는 괴물이다.

이에 투데이경기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땅에서 발발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한국전쟁을 상기하며 한국전쟁과 오산(烏山)의 연관성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

② 한 날 ‘떼제사’ 오산(양민) 보도연맹 사건을 아시나요?

소련군 출신 북한 김일성이 중화기로 무장한 인민군을 앞세워 1950년 6월25일 새벽 남북군사분계선(38선)을 넘어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한국전쟁.

남·북 쌍방에 엄청난 인명피해(사망 150만명·부상 360만명)는 물론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특히 오산(죽미령)은 UN군이 첫 전투에 참여한 곳이며, 당시 UN은 16개 나라로 이뤄진 연합군을 한국으로 파병했다.

전쟁은 그러나 군인 뿐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까지 희생당하는 괴물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른바 보도연맹(輔導聯盟) 사건이다.

본래 이는 전쟁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반공을 국시로 내건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와 군·경이 과거 좌익계 인사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살해한 사건이다.

정부와 군·경이 전쟁 초기 과거 좌익에 관계된 인사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을 추정하거나 우려한 것으로 보도연맹 소속원들이 살해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상적 문제와 무관했던 다수의 민간인들이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참혹한 난리통에 군인도 아닌 무고한 그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경찰에게 학살된 아이러니한 참극이다.

보도연맹은 좌익전향자들을 중심으로 1949년 조직된 반공교화단체로 좌익세력의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했다.

정식명칭 ‘국민보도연맹’은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체제를 모방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게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했다.

평택 이남 대부분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전쟁중에 벌어진 최초의 집단적 민간인 학살이다.

또한 북한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발생했던 좌익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의 주요 원인이 됐다.

1950년 7월21일 경북 문경군 호계면 별암리 야산에서 2백명, 영순면 포내마을 뒷산에서 3백명, 김천시 구성면에서 300명 등 김천지역 1청명(추산) 등 전국 각 지방별로 부지기수다.

이들 가운데 좌익 경력이 없으면서 친구나 주위의 권유로 보도연맹 입맹 원서에 단순 서명만으로 끌려가 희생된 양민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 오산 또한 보도연맹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반세기가 훌쩍 지나버린 지금, 오산지역 몇몇 자연부락이 한 날 ‘떼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국에서 자행된 보도연맹 사건은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수차에 걸쳐 보도됐으나, 오산지역은 지금껏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전쟁통에 보도연맹이란 미명으로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을 잃은 가족들은 강산이 여섯번 바뀐 지금도 시간이 멈춰 있다.

오산 누읍·가수·금암 등 3개 자연부락 40가구에게 매년 음력 5월17일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부모형제의 제삿날이다.

이유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군·경에 끌려가 무참히 학살된 것이다.

이장집 명단에 이름이 올랐거나 인민군이 시킨 부역에 나섰다는 이유로 날벼락을 맞았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상당수가 농사를 짓는 청·장년들로 보도연맹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 왼쪽부터 이기호씨(84), 이정일씨(76), 이정묵씨(69)

이기호씨(84)는 당시 난리통에 보도연맹으로 몰린 20대 중반의 형을 잃었다.

“누가 집에 찾아 와 비료를 나눠 준다고 해서 도장을 찍어 줬는데, 곧바로 형이 끌려갔고 며칠 뒤 수소문 끝에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형의 시신을 수습해 마차로 실어 왔습니다”

또 이정일씨(76)는 서른다섯살 아버지와 마을 구장(이장)을 봤던 큰아버지를 각각 여의었다.

그는 여나무살 안쪽 나이였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 온 아버지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정묵씨(69)는 겨우 스물아홉살 밖에 안된 아버지와 생이별을 했다.

당시 너댓살적이라 기억은 별로 없지만, 보도연맹으로 희생된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는 지금까지 크나 큰 설움이자 슬픔으로 삶을 짓누르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 이들의 시신이 수습될 수 있었던 건 집단학살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 온 이기호씨 6촌 형(당시 20대 후반)이 마을에 알렸기 때문이다.

이미 근동에서 잡혀 온 수십 수백명이 수원시 모처에서 집단으로 총살됐는데, 시신속에 가렸던 6촌 형이 확인사살 과정에서 총검에 찔렸지만, 죽은 채로 은신하면서 화를 면한 것이다.

6촌 형은 이 사실을 마을에 알린 뒤 무슨 이유인지 그로부터 행방이 묘연해 졌다.

2005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공포되고, 반민주적·반인권적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독립적 국가기관 진실화해위원회(眞實和解委員會)가 활동했으나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정묵씨(前 오산시의원)는 “6·25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자행된 보도연맹 사건은 무고한 민간인까지 제물로 삼았다. 오산은 3개 자연부락에서 양민 40명이 희생됐고 매년 음력 5월17일 같은 날 제사를 지내고 있다” 며 “이제라도 무고하게 희생된 부모형제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정확한 사실조사와 합당한 조치가 실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전쟁의 끝은 죽은자에게만 있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고 말했다.

■사진자료는 전쟁 당시 오산미공군기지에 근무했던 월워스(Robert Lee Walworth) 병장이 동료들과 촬영한 수원, 오산 일대 전경.

▲ 월워스(Robert Lee Walworth) 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