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지역에서 활발하게 봉사활동하는 이웃집 아줌마 같은 숨은 일꾼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오산시 신장동으로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궐동 농협 삼거리에서 대우아파트를 지나 공덕빌라 방향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숨이 차오고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쯤 수청2동 경로회관 맞은편에 ‘럭키정육점’이 눈에 들어 온다.

대형마트 정육부와는 다른 허름한 동네 정육점이다.

► 수청2동 경로회관 맞은편의 럭키정육점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 간 정육점에서 장모님처럼 푸근한 인상으로 고기를 썰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유인자(58) 사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찾아 온 이유를 말하고 취재를 요청하자 순간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더니 “하는 일이 없다”며 극구 취재를 거부한다.

하지만 그냥 사는 얘기만 하자는 기자의 거듭된 부탁에 마지못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 푸근한 인상의 유인자 사장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가벼운 얘기 중 우연히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같은 교회 교인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기자와 유인자 사장은 그제야 마음 속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추천을 받고 취재 나왔다는 기자의 말에 "그만큼 안하고 사는 사람도 있나?" 반문하며 "사람마다 다 사는 방법이 다르듯 나는 내가 좋은 대로 살 뿐이다. 특별히 봉사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내가 좋아 내 삶을 살 뿐이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주변의 제보에 따르면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다. 동네에 출산한 새댁이 있으면 꼭 고기 한 근이라도 전해 주어야 마음이 편하고, 동네 대소사에는 다 참여한다.

기자와 대화 도중 50대 중반의 단단한 몸매를 가진 두건을 쓴 손님이 찾아왔다. 고기를 사가는 손님과의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유인자 사장님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뇌졸중으로 투병했던 손님을 걱정하는 모습에 가게 주인과 손님의 영업적 관계가 아닌 형수가 시동생을 걱정하듯 서로의 건강부터 사는 얘기까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모습에 오랜만에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푸짐한 덤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장사해도 남느냐는 질문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남으니까 장사한다. 24년간 장사하며 공직에 근무한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다 키웠다. 그거면 된다. 욕심부리지 않는다. 이렇게 장사하며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고, 남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남에게 꾸지 않고 조금이나마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당부한 '인사 잘하고 베풀며 살아라.'란 말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다며 그냥 남과 함께 나누는 삶이 좋다"고 말했다.

유인자 사장은 시집오면서부터 했던 자신과의 약속이 하나 있다. 친정어머니가 시집올 때 준 가방에 매일 1천 원씩 모았다가 연말에 36만여 원이 모이면 그 돈으로 어려운 가정에 봉사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려운 가정에 난방 기름을 제공하였고, 요즘엔 고기를 도매로 구입해 어려운 가정에 보내고 있다.

정육점에 어울리지 않는 입구의 쌀과 커다란 거실의 용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휴. 이러면 안 되는데, 쌀장사하시는 분들께 미안해서 이래선 안되는데, 시골에서 쌀 농사지으신 분들이 판로가 없어 애태우는 모습을 보고 동네분들에게 직거래 연결해 드리기 위해서 가져다 놨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우리 가게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다. 심심하신 분들이 오셔서 쉬었다가도 가시고, 놀러도 오신다. 때론 은행이 문 열기 전 어르신들이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땐 우리 가게를 찾으신다. 그런 인간관계가 좋고 어르신들께 인정받고 동네 사람들이 허물없이 생각해 주는 게 좋고 고맙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 정육점 입구의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가져다 놓은 쌀

► 정육점 내부 - 뒷편의 거실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취재 내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던 유인자 사장은 수청 2동 경로회관과 대우아파트 노인회관에서 총무로 봉사하고 있는 노인회관 이야기가 나오자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노인정에서의 역할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 노인정은 처음에는 교자상 2개로 시작할 만큼 작았지만 회장님과 여러 어르신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교자상 6개도 부족할 정도로 잘 운영이 되고 있다. 우리 노인회관을 많이 알려서 여러 곳의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우아파트 노인회관은 어르신들이 빈터에 직접 농사를 짓고 고추장, 된장을 담가 연말에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가정의 봉사활동에 사용한다. 또한 매월 지원되는 운영비 중 5만 원씩을 따로 적립하여 연말 봉사활동에 보탠다. 어르신들은 스스로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며 총무인 유인자 사장은 추가적으로 쌀과 고기를 보태고 있다.

►대우아파트 노인회관의 장독대

►수청2동 경로회관

수청 2동 경로회관 회장은 “총무는 막내처럼, 딸처럼 참 살가운 존재다. 수시로 드나들며 온갖 잡일을 다한다.

아무 대가 없이 우리와 함께하는 총무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취재 중 느낀 유인자 사장은 봉사자가 아니었다. ‘삶 자체가 베풀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은 동네 큰 누님’이었다.

계산하고 머리 굴리는 삶이 아닌 그냥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좋고,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가까이서 어른을 모실 수 있어 기분 좋은 오산시 신장동의 소시민이었다.

►수청2동 경로회관 앞 수줍은 포즈의 유인자 사장